빗장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랑할

  만난지 하루 밖에 되지 않았더라도 십 년이 된 것 처럼 편한 사람이 있고,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더라도 은근한 불편함이 있는 사람이 있다. (후자의 경우는 불편함 보다는 긴장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조금 더 적절할 것이다.) 친구 사이에는 그렇다. 처음부터 나에게 '원래부터' 조금 더 편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원래부터'라는 단어를 강조한 이유는 그런 군상이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했기 때문이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이것이 나의 대단한 착각이었다고 방금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에. '원래부터'란 없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냥 마음을 열고 싶지 않았던 것 아니었을까.
  마음을 열기로 마음 먹은 순간, 방어적이었던 그래서 실패했던 과거와는 달라진 태도를 가져야 겠다고 생각한 순간 이토록 가까워질 수 있는지 예전엔 몰랐었다. 가진 것도 그렇게 많지 않은 내가 무엇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방어적으로 행동했을까.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오늘. 점점 나아지고 있나?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은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랑할

  딱히 외롭지 않았다. 인간이 본연적으로 가진 외로움을 제외하면 그저 아무 일 없는 나날들이었다. 나는 나 대로 하고 싶은 것을 살며, 종종 심심하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은 나날들이었다. 사람은 사건의 흐름으로 시간을 기억한다고 한다. 혼자였던 나날들은 둘이었단 날들보다 기억할 만한 사건들이 적었기 때문에 시간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지만 사실상 한 달이, 일 년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처럼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빨리 지났다고 한숨을 쉴 만큼의 속도와 비슷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이룬다는건 정말 신기하다. 더디게 가는 것 처럼 느껴졌던 나의 시간이, 가끔은 종종 심심하다고 투덜거렸던 시간들이 기억 나지 않을 만큼 새로운 기억으로 덮였다. 덮이고 있다. 끝이 힘들고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만큼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이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요즘. 분명히 익숙한 감정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시작과 끝은 정 반대에 서 있지만 동일한 성질의 것이다.

  이제는 눈을 감으면 얼굴이 찬찬히 떠오른다. 이런 게 익숙해진다는 걸까.

나의 거울 Murmur

한 평생 함께 살아 온 부모님을 닮는다는 것. 나의 부모님은 동년배이시고 첫 째인 나를 28살에 낳으셨다고 한다. 그 분들께서 살아온 인생의 반을 나와 함께 하신 셈이다. 나는 부모님과 한 평생을 함께 살고 있다. 감사하게도.

엄마 뱃속에서부터 기억나지도 않는 까마득한 어릴 적 나의 모습을 따라 지금까지 나는 부모님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을까 궁금해진다. 명확히 수치화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모르긴 몰라도 부모님이 나에게 받은 영향을 훨씬 웃도는 수치일 것이다. 그리고 다 큰 어른인, 갓 엄마아빠가 된 그 때의 부모님보다 백지장 같이 무의 상태인 내가 어느 것이라도 훨씬 빠르게 영향 받았을 테고.

지금 나이의 엄마아빠도 나 같았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부모님 나이가 되면 또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을 것 같다. 분명히 부모님을 닮고 싶은 점이 있지만 부모님이 나의 좋은 점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는 요즘. 그저께는 엄마가 아빠에게 뭔가 잘못 하고 있어서 ‘엄마 이건 내가 생각했을 때 단단히 잘못됐어’하고 단호히 얘기했다. 보통 곧 죽어도 본인 말이 맞다고 하는 분이 겸연쩍게 웃으며 알았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묘했다.

언니네 이발관을 좋아한다면 전두엽 자극제



2008년 그 시절의 나를 이루었던 몇 개의 음반 중, 그 해 발매된 언니네 이발관의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기타와 드럼을 연주할 줄 알았다면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할 수 있을 만큼 내게는 익숙하다.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밴드의 보컬 이석원을 좋아한다면 그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출간이 된 지 거의 10년 만에 책을 접했는데 그 전과 또 다른 시각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작년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팬으로써 크게 아쉬워 했지만 창작이 그토록 큰 아픔이라는걸 안다면 어느 누가 선뜻 다시 요청할 수 있을까. 마음 속으로 작게나마 바랄 뿐이다. 음악 하는 게, 창작 하는 게 더 이상 고통이지 않고 행복한 일이라고 느껴질 때 다시 돌아온다고 하는데 그 때가 정말 왔으면 좋겠다. 지금은 ‘아름다운 것’을 듣고 있다.


ADOY - Grace 전두엽 자극제

고양이 YODA의 이름을 거꾸로 한 ADOY라는 밴드의 탄생. 17년 첫 발매된 EP의 이름이 Catnip이라는 것을 보면 연관성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신스팝적 요소에, 비교하자면 바이바이배드맨의 느낌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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